우아한 삶
누구든 그럴 거다. 가끔 혼자 상상하는 인스타 한 장짜리 사진 같은 단편적인 미래의 내 모습이 있을 테고, 거기서 조금 더 클릭해서 들어가 보면 내가 주인공인 몇몇 멋진 시퀀스들이 뇌 주름 어딘가에 꺼내기 좋게 항시 대기 중에 있다.
내가 그리는 미래의 동경하는 장면들은 부끄럽지만 ‘우아한 삶’이다. 그런데 이 우아한 삶이라는 것이 딱 떨어지는 어떤 형태가 아니고, 되게 두리뭉실하고 막연하다. 뭐 단어 자체가 그렇잖아..
언젠간 미래의 내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우아한 시퀀스들을 홍상수처럼 롱테이크로 디테일하게 그려보자니 누구한테 들킬 일도 없는데 왠지 혼자 낯부끄러워서 곧 그만두곤 한다.
그래서 이 상상들은 대개 단편적인데 이를테면 햇살 잘 드는 창가의 테이블, 여유롭게 커피 한잔 즐기며 소설책 한 권 읽는 나른한 오후. 2층 서재에서 내려와 1층의 리빙룸을 지날 때 소파에 누워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 아내를 보고, 정원에 나가 아이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는 뭐 그런 정도. 아 써놓고 보니 또 괜히 낯간지럽고 쪽팔리고 그렇네.
우아한 세계
얼마 전에 송강호가 주인공인 ‘우아한 세계’를 다시 보았다.
10년 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코끝 찡한 감정들이 밀려들었는데, 이게 내가 그때 본 그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. 저런 장면이 있었나? 아.. 이 장면이 저렇게 슬픈 장면이었나?
특히 크레딧이 올라가며 송강호가 TV를 켜놓고 라면을 먹는 마지막 장면에선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.
왠지 처량한 아니 처량하기보다는 처절해 보이던, 끝까지 버릴 수 없고 꼭 이루고 싶은 그만의 우아한 세계.. 그가 상상하고 그리던 시퀀스는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지.
왜 10년 전에는 그런 걸 못 느끼고, 깡패 영화가 왜 이렇게 재미없냐, 라는 생각만 들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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